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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내동칼럼 이것이 번거롭다 할지라도 꼭 거쳐야 할 절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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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1월 24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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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이 말씀에서 주님께서 자신을 양의 문으로 소개해 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스라엘 현지를 방문하고 나서 확실하게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보아스의 들녘으로 알려진 들판에 있는 동굴이 주님 당시에는 목자들이 양의 우리로 사용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어 목자가 이 우리에 양들을 다 들여 놓은 후에 입구에 누어서 양의 문의 역할을 한다는 설명을 듣고 이 말씀의 의미가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양의 우리인 이 동굴에 양들이 들어오며 나오려면 굴 입구에 누워있는 목자를 통하여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의 문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당시의 상황을 상기하시며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떠오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출27:14-16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막의 문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성막의 문 역시 우리 주님 예수에 대한 예표입니다.

성막의 문은 삼면이 하얀 세마포로 둘러싸인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둘러싼 하얀 세마포는 성막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입니다.

그러므로 동쪽에 있는 문을 통해서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이 문은 경계선의 역할을 하는 세마포의 전체 크기에 비하면 상당이 넓이가 넓은 편입니다.

어떤 건축물의 문보다 비율로 따지면 성막의 문의 넓이는 넓습니다.

 

성막문의 넓이의 비율이 담벼락에 5/3이 되니까요?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얼마나 넓은 가를 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 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문 되신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입장을 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이 넓기는 하지만 그 넓이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축자가 임의로 이 문의 넓이를 좁히거나 넓힐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는 이들을 영접함에 있어서 또한 주님 안에서 교제를 하여야 하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분별함에 있어서 주님께서 정해 주신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 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입장을 한 사람을 교회에 영접을 할 수 있고 이들과 주님 안에서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은 안으로 들어와야 할 이와 들어와서는 안 되는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즈음 일부 선교지 나 모임들에서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제를 해야 할 대상은 그가 문 되신 주님으로 인하여 천국에 입성을 한 자인지 아닌지를 먼저 분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교제를 하게 되면 이것은 스스로가 문의 넓이를 조절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서 그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을 금하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구원이 불분명한 이들과 동역을 한다든지 그들을 성도와 동일하게 대우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이들을 주의 만찬에 참여를 하게 한다든지 그들을 성도의 교제에 참여를 하게 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는 일 중에 정말 조심을 하여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강단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일꾼들이 구원여부가 불분명한 이들에게 가서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오류들이 현재 모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갈라디아 교회에도 다른 복음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혼란에 빠진 이유가 가만히 들어온 거짓형제들 때문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들이 성도들의 교제에 동참을 한 것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성도들에게 혼란을 가지고 오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됩니다.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더 이상 하나님의 처소로써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분별없이 아무나 교제를 하고 영접하는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다처를 하면 자녀를 많이 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영접하여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이들은 문 되신 주님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에 입성을 한 자들입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 비록 번거롭다 할지라도 이 절차를 꼭 거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