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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내동칼럼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현웅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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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0월 11일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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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 말씀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일의 의미 대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설명을 하던 중 자신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 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향후 전망은 그가 감옥에서 곧 석방될 것이라는 것입니다.(빌1:19,25절)
그와 같은 전망을 하면서 그가 21절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자신은 석방되지 않고 죽어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고백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자신은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을 한 것일까요?
죽는 것은 가장 귀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인데요.
얻음으로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닌가요?
어떻게 가장 귀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이 빌립보서가 쓰일 당시는 로마 황제의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극에 달해서 성도들이 주님을 믿은 댓가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때였습니다.
집도, 가족도, 심지어는 많은 이들이 생명까지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는 그가 오히려 예수 믿고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을 법도 한데 오히려 얻는 것이라니요.

괜히 그가 석방될 것을 알고 허풍을 한 번 떨어보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가 생명을 가지고 그렇게 했을 리가 만모합니다.

그러면 그가 말한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요12:24절에 보겠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알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듯 주님의 죽으심으로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복음을 위한 죽음은 많은 열매를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심어서 생명을 얻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의 죽음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인도의 기독교 인구는 대부분 남부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북부 지역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입니다.
그런데 북부지역의 미조람 주와 나갈랜드 주에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입니다.
처음에 이 소식을 듣고는 많이 의아했는데 어느 한 형제를 통해서 이곳들의 옛 상황들을 들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식인 풍습이 있을 정도로 미개한 지역이었고 그 때에 이곳에 왔었던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를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살해를 할 정도로  복음전도의 환경이 척박한 곳이었는데 이와 같은 곳에 한 알의 밀알된 성도들로 인해서 지금은 기독교화 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순교는 이렇게 많은 열매를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기에 그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또 그는 성도의 고난은 미래에 많은 영광을 가지고 온다고 가르쳤습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순교보다 더 큰 고난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교자가 얻게 될 영광은 가장 고귀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결코 잃는 것이 아니고 더 얻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물론 그의 순교를 하려는 마음의 동기가 이와 같은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내 안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님에 대한 사랑이 죽음도 불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것을 이와 같은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서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에도 지역교회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주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위해서 성도들 특별히 일꾼들의 희생이 얼마나 필요한 가를 알려 줍니다.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얼마든지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는 이가 변변찮은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은 모임은 영적으로 강건해 집니다.
교회에 세상 적으로 유력한 이들이 많아서 교회가 든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신앙 때문에 시집을 가지 못하고 있는 자매들이 많은 모임이 든든히 서갑니다.
좋은 배우자 만나서 결혼을 잘하는 모임이 강건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느라 집 장만을 하지 못하고 전세나 월세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든든합니다.

초대 교회가 그랬지 않습니까?
그들은 주님 때문에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했습니다.
가족들로부터도 외면을 받았습니다.
재산도 빼앗겼습니다.
있는 것도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다 헌신을 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 맞고 심지어는 사형을 당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아무도 예수님 믿고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항변하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이들의 이와 같은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서 초대교회는 큰 부흥을 맛보았습니다.
주님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은 이렇게 더 얻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천년왕국과 천국에서 얻게 될 영광은 감히 측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고백이 그 교회 성도들의 고백이 된다면 오늘 날에도 큰 구원의 역사와 강건한 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