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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칼럼 어떻게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인가? (이현웅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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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8월 26일 2014년

본문

어떻게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인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5-18)

위 본문 말씀 중 16절의 “세월을 아끼라”라는 말씀이 다른 성경에는 “최고의 인생이 되게 하라”고도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의 의미를 최고의 인생으로 만들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고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요?
15절과 17절 그리고 18절에서 그 비결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15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바를 살펴보면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자세히 주의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라는 것입니다.

충동적으로 살거나 부화 내동하는 삶은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 첫째로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생각을 하여야 할까요?
그것에 대해서 17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이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최고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의 뜻데로 산 인생이 최고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권력자가 되고, 최고부자가 되고, 최고의 학자가 되는 것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서 산 인생이 최고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에서 증거해 주는 최고의 인생이 하찮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비우시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주님을 어떤 이들은 인생의 패배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원하던 왕국을 건설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역의 정죄를 받고 사형 틀에서 인생의 최후를 맞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또 유대인들의 눈에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으로 비추어 졌을까요?
산헤드린 공회원의 높은 지위를 잃고 반대 받고 핍박받는 비천한 인생을 살았으니 그들에게는 그가 인생의 실패자로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최고의 인생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을 가장 높은 곳에 있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또한 많은 면류관을 얻고 주와 더불어 천년왕국과 그 나라에서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최고가 되려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최고의 대학에 가기 위해서 모임생활도, 주님과의 교제도 등한시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렇게 해서 최고의 대학에 가면 최고의 인생을 살게 될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최고의 직장생활을 하느라 모임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들도 봅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진리를 버리고 세상과 타협해 모임으로부터 멀어지는 이들도 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이 이와 같은 이들은 최고의 인생과 거리가 멀리 있는 자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시간들을 사는 인생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실패한 인생일 뿐입니다.
세상에서는 최고가 되었지만 하나님께는 그저 실패한 인생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무명하지만 주님께는 최고의 인생을 산 많은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진리인데도 아직까지도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요.
심지어는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 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모이기에 힘쓰라고 가르치며 자신의 자녀는 입시와 입사를 준비하느라 모임에 오지 못하는 데도 이것을 그대로 방치 합니다.

자녀들의 직장을 선택할 때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이름이 있는 직장이냐 아니면 급료가 얼마나 되느냐를 더 따져보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에 우선적으로 신앙을 보지 않습니다.
일단 구원만 받으면 되고 그 다음은 어떤 직장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공부를 했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앙보다 직장이 우선인 인도자들도 있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직장을 갖고도 장로의 일을 계속하는 이들도 없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18절에서도 최고의 인생을 사는 또 한 가지 비결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성경에는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서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다시 성령님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오해를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번역은 “성령 충만하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성령님을 더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 충만 할 수 있을까요?

성령 충만하라는 명령이 있는 18절은 17절 말씀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곧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뜻데로 산 결과가 성령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성령님이 더 부어지므로 가득한 상태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한 번 오시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반복해서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의 의미는 “이해한 주님의 뜻데로 살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의 뜻 가운데 사는 이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성령 충만한 성도가 최고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여 사는 성도가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인생을 사신 최고의 모델은 우리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교제를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최고의 인생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서 신중하게 주님의 뜻을 살피고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뜻데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또 최고의 인생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인생입니다.
성령 충만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곧 주님의 뜻데로 인생을 살라는 명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