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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내동칼럼 다른 복음으로 시작된 교회의 변질 (이현웅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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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21일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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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4:8-11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이 밀씀은 다른 복음으로 시작된 교회의 변질이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구원 받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곧 교회가 세속화된 것입니다. 기초가 기울어지면 건물 전체가 기울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국모임의 교파화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들의 복음과 우리가 받은 복음을 분별치 못하는데서 모임의 교파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전하는 복음은 다른복음입니다.

그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받은 복음과 비교를 해 보면 알 수 있는데도 분별치 못하고, 그들도 다 주님을 믿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며 그들에 대해서 교제의 문을 열어 버렸습니다.

 

물론 그들을 모임 안에 드려와 강사로 세우기까지 하여서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아직까지 소수입니다.

그러나 저들에게 가서 배워서 그 배운 것을 가지고 들어와 가르치는 이들은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 지금은 가지 않고도 싸이버 상으로 얼마든지 그들의 것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입니다.

 

문을 닫고 어떻게 그들에게 우리가 받은 귀한 것을 전해 줄 수 있느냐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복음의 문까지도 닫는 것은 물론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교회의 문까지도 그들에게 열어 주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주교 교황이 종교 통합운동을 하면서 세상으로부터 박수를 받는 것을 본 개신교의 일부가 이  통합운동에 가담을 하였습니다.

이 운동에 가담하는 이들은 포용력있는 이들로, 반대하는 이들은 배타적인 이들로 인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타적인 이들은 세상도 배타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통합이 아니라 야합입니다.성경이 말하는 영적인 간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조류가 모임에 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지키려는 이들은 배타적인 이들로, 분별없이 주님 주신 것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포용력이 있는 이들로

취급을 받는 현상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유대인 성도들이 떠나온 율법으로 회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을 받아 들인 결과 입니다.

 

물론 갈라디아 성도들이 전에 섬기던 우상이나 다른 신에게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만 사도 바울은 이들이 율법으로 돌아간 것이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갈4:9절)

갈라디아 성도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유대인 성도가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나 이방인 성도가 옛 종교로 돌아가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자신의 수고가 헛되게 될까 염려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개가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모임이 교파화되는 데에도 이와 같은 현상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파를 깊히 경험하지 못한 일부의 인도자들이 교파교회가 행하는 일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분별없이 그러한 것들을 모임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나 우상숭배와 같이 전에 섬기던 종교의 행위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부터 교파 교회에 몸을 담았다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이후에 그 곳을 떠나 모임으로 온 성도들은 이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나 성직제도를 쫓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직제도가 있었지만 신약에는 성직이 없습니다.

성도들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파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모두가 은사를 따라서 주님을 섬기는 모임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파 출신의 성도들은 목사의 호칭을 사용한다든지 평신도와 사역자를 구분하는 것들을 옛날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교파 사람들은 자신의 교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정작 성경에는 교파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복음을 깨닫고 나면 교파교회에 머물러 있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파없는 성경의 교회를 추구하는 모임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임을 형제교회라고 호칭을 하며 하나의 교파처럼 행세를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들이 떠나온 옛날로의 회귀로 비추어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파교회는 말씀시간을 예배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구약의 제사를 대신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위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한 예배시간이 사람들을 위한 시간으로 전락을 하는 것을 경계를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만찬예식과 침례 외에는 교회에게 주신 예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절기들을 모방한 부활절,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등등의 절기를 지키는 것을 우상을 섬기며 그 날과 절기를 지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부디 교파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이 글을 읽고 모임에 나타나고 있는 교파화 현상을 이해하고 이것이 옛 것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돌이키기를 바랍니다.오직 성경만을 쫓고 성령님의 교제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서방의 모임들이 부활절이다, 크리스마스다 하는 절기를 지키는 것처럼 비추어 집니다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날들이 우리에게 설날이나 추석같은 국가적 명절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휴가를 즐기는 것이지 교회가 그 날들을  절기로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