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칼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현웅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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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2월 10일 2014년본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늘 이 말씀은 성도와 율법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성도는 더 이상 율법과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19절 말씀에서는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는 더 이상 그 나라의 법에 대한 의무도, 법으로 인한 권리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법들과 상관이 없게 됩니다.
성도들도 율법에 대해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율법으로 금한 이방인과의 식사를 한 것은 성도로서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율법주의자들을 두려워하여서 그 자리에서 물러간 것은 성도다운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성도가 마치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 19절 말씀은 성도가 율법에 대해서 죽은 목적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만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가 없고 오히려 죽게 됩니다.
율법의 모든 조항을 항상 지키지 아니하면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하고 율법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야에서 다 엎드려 죽었습니다.
이 일이 율법 아래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해서는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성도가 어떻게 율법을 향하여 죽었습니까?
19절 맨 앞에는 율법을 인해서 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이것에 대한 설명이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말씀이 증거해 주고 있는 바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겠습니다.
율법을 인해서 죄인들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밝히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님의 죽음에 바로 우리가 참여를 하였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죽음일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에 찾아오신 성령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성령님의 침례로 머리되신 주님과 연합하게 된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곧 성령님은 성도를 주님과 연합시켜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과 연합이 된 자이기 때문에 주님의 죽음도 자신의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주님과 함께 죽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그 안에서 성도들도 살리신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죽음에 만 연합이 된 것이 아니고 부활에도 연합이 된 것입니다.
벧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 말씀이 그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라고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거듭남은 성령님의 사역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성도들도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님으로 인해서 주님과 연합이 된 자들이고, 주님 안에서 율법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 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의 지침은 더 이상 율법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령님이십니다.
20절 마지막 부분이 그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옛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주님 중심적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식사자리에서 뒤로 물러간 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은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서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더 이상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뜻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 후의 말씀은 이와 같은 삶을 사는 동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지만 몸은 구속의 날까지 옛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 동안 삶을 사는 동기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곧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자신을 위해서 온갖 멸시와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받을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식사자리를 지켰을 것입니다.
그가 그 식사자리를 뜬 것은 주님의 사랑을 잊어 버린 데에서 기인을 한 것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율법과 관계가 없는 자입니다.
주님과 관계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