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칼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소망의 인내가 사라진 이유 (이현웅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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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월 04일 2015년본문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소망의 인내가 사라진 이유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후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위의 두 말씀을 잘 살펴보면 후서 말씀에 소망의 인내가 빠진 것을 발견케 될 것입니다.
전서에서는 발견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망이 후서에서는 왜 발견이 되지 않는 것일까요?
이것은 오늘 날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소망이 아닌 두려움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잘 살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을 듣고 나면 어떤 성도들은 두렵다고 고백을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처음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들을 때에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 주님의 다시 오심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노하심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희망찬 메시지였습니다.
살전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런데 전서가 쓰여지고 후서가 쓰여지는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살후 2장1-3절에서 엿볼 수가 있게 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주님의 공중 강림과 지상 재림을 구분을 못하는 이들 곧 이들은 구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유대인인 것입니다.
이들에 의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미 주님의 날이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너희들에게 있는 환난이 바로 주님의 날이 이르렀다는 증거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이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 일부에게 영양을 주어서 그들에게서 주님 공중 강림의 소망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교회 가운데 들어온 유대인들은 구약에 주님의 날 곧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예를 들어서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가 환난 전에 휴거가 된다고 말한 곳이 없다고 주장을 하였을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구약은 요엘2장1절이나 말라기 4장5절 등을 통해서 주님의 날이 두려운 날 곧 심판의 날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지 이 환난 전에 하나님께서 주님을 보내시어서 성도들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 자신도 그 분의 지상재림 만을 말씀을 하셨지 공중강림에 대해서 언급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성도들을 혼란케 하는 좋은 근거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후서를 통해서 그들의 미혹으로 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하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주님의 날에 있게 될 환난이라면 멸망의 아들 곧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은 것과 그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배도하는 일이 왜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도 구약이 증거해 주고 있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9장27절이나 11장36절에서 그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와 같은 논리에 의해서 주님의 공중 강림에 대한 소망을 잃어 버리고 오히려 주님의 날 곧 환난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날도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을 듣고 두려움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침투한 유대인들의 논리로 주님의 공중강림은 없다고 주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24장에서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여러 환난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13절에서는 이 환난을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를 환난 전에 주님께서 공중에 오시어서 그 곳으로 끌어 올리신다는 말씀을 믿고 환난을 대비하지 않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라 하며 성도에게서 소망을 빼앗아가고 대신에 환난에 대한 두려움을 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증거하지 않고 주님도 말씀한 일이 없는 주님의 공중 강림은 사도 바울의 자작극에 불과 한 것인가요?
먼저 이와 같은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에 의해서 증거되기까지 감추어 졌던 비밀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그러나 바울은 이것에 대해서 증거를 하면서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살전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전한 주님의 강림하심에 관한 증거가 바로 주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초림도 경험치 못한 구약의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의 자세한 내막을 증거할 필요가 없었던 것뿐이지 주님의 공중 강림하심이 하나님의 의중에 없으셨던 일이 아닙니다.
구약이 직접적으로 주님의 공중 강림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환난 전에 성도들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감추어 놓으신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구약을 통해서도 환난 전에 성도들을 먼저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성도를 죄인들과 같이 심판을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받으셨던 도전을 또 받으셔야함 하실 것입니다.
창18: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실 때에 먼저 롯과 그의 딸들을 소알 성으로 피신을 시키셨습니다.
또한 노아의 때에도 그의 가족 8명을 방주에 들어가게 한 후에 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57:1-2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도 이렇게 의인들을 악인들의 화액 전에 불러 가시는 분이심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의인을 죄인들과 함께 심판하시지 않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환난 전에 공중에 오셔야만 하고 그 곳으로 성도들을 불러 올리셔야만 하는 것이 구약의 가르침이고 또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주님의 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성도들은 주님의 진노하심에서도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