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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내동칼럼 교회의 성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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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월 22일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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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성장(3)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4:11-16)

 

오늘은 이 본문 속에 있는 교회 성장의 결과와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4절부터 16절 말씀에서 그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4절 말씀에서는 교회 성장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각 성도들이 양육을 받아서 주님을 아는 것과 믿는 일에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면 나타나게 될 결과라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거짓된 것을 분별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거짓 것에 속아서 이리 저리 방황하지 않게 된 다는 것입니다.

 

왜 거짓된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들이 득세를 하느냐에 대한 답이 이 말씀 속에 있기도 합니다.

기존의 교회들이 성도들을 양육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거짓을 분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초부터 양육이 제대로 안된 것이지요.

 

또 많은 성도들이 비성경적이 교회들로 돌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후에 교사들과 목자들을 통해서 양육을 받아서 성장을 하여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함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현상 그 이상이 아닙니다.

 

소위 구원파 계통의 사람들이 이리 저리 방황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하나님이라 주장하는 이단들에 빠지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교회의 성장은 성도 개개인의 성장이고 이것은 양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서 교회에 은사자들을 주셨고 각 개인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다음은 15절에 나타난 양육의 방법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것의 첫째는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이 사랑인 것과 같습니다.

양육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양육하신 부모님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왜 이 고생을 하셨지요?

사랑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우리는 자라났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을 양육하는 방법도 사랑인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라는 말씀이 그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1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으로 잘못된 갈라디아 성도들을 위해서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고백을 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서 자신을 주심과 같이요.

사도 바울도 이렇게 성도들을 사랑으로 양육을 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을 위한 수고의 이유가 다른데 있다고 의심을 받고 있는 바울이 그 이유는 오직 그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말씀을 통해서도 그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후12:15)

 

두 번째의 양육의 방법이 15절 말씀 속에 나타나 있는데요.

그것을 참된 것을 하여라는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말하여라고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바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육의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양식을 주어야만 그가 자라가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때에 맞는 양식을 공급하게 될 때에 그가 자라게 됩니다.

 

지금 세대와 전 세대의 몸집이 차이가 나는 이유도 음식에 있습니다.

전 세대는 지금 세대만큼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영양 공급이 과다해서 문제입니다.

 

양육의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게 하고 묵상하게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을 받게 할 때에 성장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이것을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갓난 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양식은 때에 맞게 공급이 되어야 합니다.

장성한 자에게 어린아이의 식물을 주어서는 그가 성장을 할 수가 없겠지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5:14)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을 전도자가 양육을 하면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성도들을 교사와 목자를 통해서 그에게 합당한 영적 말씀을 들으며 양육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아무래도 말씀과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성도들의 양식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목자는 말씀과도 시간을 보내지만 성도들과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반면에 전도자는 불신자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요.

 

그러므로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말씀과 많은 시간을 보내므로 성도들을 위한 양식을 준비한 교사들로 인해서 말씀을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또 목자들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16절에서도 양육의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해서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곧 은사자들 뿐만 아니라 성도의 양육이 각 지체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 지체에게도 주어진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은사를 통해서 다른 지체를 돕는 것입니다.

몸이 머리에 지시를 받아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처럼 성도들도 서로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일부 은사자들 만이 일해서 자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로 제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2:42)

사도들의 가르침 후에 서로 교제하는 일이 있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는 이렇게 각 지체들이 자기의 분량대로 역사하여서 스스로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교제가 없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저 말씀 듣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교회들 말입니다.

이런 교회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는 소그룹이 운영이 되고 또 개인 양육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두세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힘에 겨워하는데 어떻게 은사자들이 모든 성도들을 양육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양육은 그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각 성도들이 성도들을 양육함으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적집회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평상시에 서로 만나서 자신이 배운 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주님을 나누게 될 때에 교회가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엡4:11-16절 말씀을 통해서 교회 성장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