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칼럼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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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6월 29일 2016년본문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딤후3: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3: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딤후3: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딤후3: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딤후3: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목회를 위해서 필요한 실질적인 것들에 대해서 디모데 전후서를 통해서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교회를 와해시키려는 사탄의 계략들 중에 거짓 교사에 의한 내분을 일으키는 일에 대해서 위의 본문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절부터 9절까지는 거짓교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고
10과 11절은 참교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놀랍게도 참교사의 모델로 자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참교사의 9가지 덕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디모데가 보고 알았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과연 보고 알았거이와”
위의 본문 말씀을 다 설명을 하려면 글이 너무나 길어지기 때문에 참교사와 거짓교사를 이 말씀을 가지고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배우는 우리에게도 유용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배워야 하느냐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위의 말씀을 통해서 학생의 입장에 있던 디모데가 선생인 바울의 말만 듣고 주님을 배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는 바울이 행한 일들을 보고 알았고 이 일을 통해서 배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삶을 학생들에게 공개를 했던 것입니다.
학생들과 늘 동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비롯한 그의 학생들은 그의 말뿐만 아니라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삶을 통한 가르침 이것은 주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막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 그들이 주님과 함께 하며 보고 배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사는 그들의 삶이 제자들에게 공개되어 있는 자이며 그 공개된 삶을 통해서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거짓교사들은 그들의 삶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오직 말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에 의해서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자신의 말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은폐를 하는 것입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들의 경건한 말들과 공개석상에서 행하는 일들은 부패한 내면을 가리워 주는 가면일 뿐입니다. 그들은 말뿐이고 그들의 삶에 아무런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도 여전 불경건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삶을 공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가르침은 말뿐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방법입니다.
고후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가면을 쓰는 것 이것이 사탄의 방법입니다. 사탄은 자신을 은폐합니다. 천사의 가면은 바로 그 역할을 해 주는 것이지요.
참 교사들은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을 보지 못하고 말만 듣는 이들에게는 존중을 받는 데 가족들에게는 존중을 받지 못하는 이는 거짓교사일 가능성이 큼니다.
참교사는 말씀을 알아듣게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먼저 순종하여서 본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논리적이고 조리가 있는데 그 말씀에 순종한 삶이 없는 이들은 거짓교사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 때는 백만 명의 신도를 자랑하던 전도관이라고도 불렸고 천부교라 했던 이단의 몰락의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이들의 교주였던 박아무개는 인간의 타락을 성적인 타락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도들에게는 부부간에도 성관계를 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박아무개가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린 사건이 발생을 해서 크게 기사화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죽자 이 교주는 처녀와 재혼을 합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부인이 아이를 갖게 됩니다.
‘성관계를 갖지 않고 어떻게 자녀를 갖게 되었겠나?’라는 생각을 신도들이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의 청산유수 같은 말에 넘어갔던 많은 이들이 그의 이와 같은 행동들로 인해 회의를 품게 되었던 것이지요.
지금은 2000여명이 이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안 아무개 증인회는 벌써 몇 번 죽은 그들의 교주의 재림의 시기를 말했었지만 그 해에 오지 않았습니다. 1988년,2012년! 이런 것들로 인해서 회의를 느낀 그 안에 있던 이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라고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을 오해를 하여서 거룩한 삶 살려는 이들을 율법주의로 매도하고 자신들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행위니까’하면서 말이죠.
자신이 한 말을 자신의 행위로 부인하는 이들은 거짓교사입니다.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참 교사는 성령님으로 인해서 자신의 한 말을 행위를 통해서 증명해 내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아닙니까?
여러분의 교사가 바울과 같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도 여러 분을 가르치고 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분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교사가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배우는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저의 사사로운 권면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러합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와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공개된 삶 곧 빛 가운데 산다는 것은 완벽한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직한 삶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오해는 없으시기를 바랍니다.